고양누리길을 걷다(1), 고봉누리길
고양누리길을 걷다(1), 고봉누리길
  • 최국진 발행인
  • 승인 2018.09.18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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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대표적 산인 고봉산과 황룡산을 거닐다
고봉누리길을 가다 보면 자주 보인다.
고봉누리길을 가다 보면 자주 보인다. 길이 헷갈릴 때는 무척 반갑다.

[미디어고양파주] 고양누리길(둘레길)은 모두 14개의 코스가 있다. 제1코스 북한산누리길(6.97km/소요시간 2시간 20분), 제2코스 한북누리길(6.5km/2시간 10분), 제3코스 서삼릉누리길(8.28km/2시간 15분), 제4코스 행주누리길(11.9km/3시간 20분), 제5코스 행주산성역사누리길(3.7km/1시간 10분), 제6코스 평화누리길(11km/2시간 30분), 제7코스 호수누리길(6.24km/1시간 25분), 제8코스 경의로누리길(7.25km/1시간 50분), 제9코스 고봉누리길(6.72km, 2시간 30분), 제10코스 견달산 누리길(10.2km/3시간 25분), 제11코스 송강누리길(6.6km, 1시간 40분), 제12코스 고양동누리길(7.1km, 2시간 40분), 제13코스 오선누리길(5.7km/1시간 25분), 제14코스 바람누리길(15.5km/3시간 50분) 등이다.

고양누리길 전체 안내도 (자료 = 고양누리길 홈피)
고양누리길 전체 안내도 (자료 = 고양누리길 홈피)

오늘은 고봉누리길을 선택하였다. 제9코스 고봉누리길(6.72km, 2시간 30분)로 ‘전국 10대 아름다운 숲길’에 빛나는 이야기 길로 총 6.72km, 2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길이다. 안곡초등학교를 시작으로 하여 고봉산, 황룡산을 넘는 코스다. 안곡초 - 안곡습지공원(추만 정지운 선생 묘) - 인동장씨 묘역(장희빈 가족 묘역) - 만경사 – 고봉산 갈림길(정상 부근) - 영천사 – 고봉정 – 고봉로삼거리 – 황룡산 입구(금정굴) - 용강서원 – 상감천마을 - 권필의 묘 등이다. 이번에는 고봉산 순환코스 부분은 다음 기회로 기약하고 여정을 잡았다. 

고봉누리길 안내도
고봉누리길 안내도 (자료 = 고양누리길 홈피)

안곡초등학교를 지나 안곡습지공원을 살펴 보았다. 이 지역은 개발되기 전에는 일부 거주민이 있었고, 논농사를 짓던 곳은 습지로 되었다. 1999년 대한주택공사(현 LH공사)가 중산동에 아파트 단지(현재 하늘마을)를 조성하려고 계획하였으나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다. 시민의 반대 운동, 지역 정치인의 중재를 통해 일부 단지 개발(하늘마을 1~6단지까지만 개발)과 개발이 저지된 일부 토지를 고양시에서 매입하는 조건으로 대한주택공사는 아파트 단지 건설은 포기하고 현재와 같은 습지공원이 조성되었다. 

안곡습지공원
안곡습지공원. 뒤로 하늘마을 6단지가 보인다.

안곡습지공원 안 쪽에는 정지운 선생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구석에 있다. 

추만 정지운(秋巒 鄭之雲 1509~1561)은 고양시 일산지역을 대표하는 조선시대의 학자로 고양 문봉서원에 제향된 고양팔현(高陽八賢) 중 한 분이다. 선생의 묘소가 있는 곳은 고봉산 남서쪽 기슭으로 예전에는 안골이라 불리기도 했다. 현재는 안곡습지공원과 인접해 있다.

정지운 선생은 본래 고양 출신으로 당대의 대학자인 사재 김정국(金正國)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후 천명도설(天命圖設)을 지었다. 특히, 퇴계 이황(李滉)선생과 학문적 교류가 있어 현재 묘소의 옛 비문은 퇴계 선생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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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만 정지운 선생 묘소. 문이 잠겨져 있어 근접 촬영은 하지 못했다. 방문 당시 벌초가 되어 있지 않아 마음이 쓸쓸했다.  

다음 코스는 장희빈 가족 묘역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숙종의 희빈인 인동 장씨 장희빈 가족이 잠들어 있다. 이 묘역은 본래 서울 은평구 지역에 있었으나 1974년 현 위치로 이전한 것으로 장희빈의 부모 외에 선대 및 후손의 묘소가 있다. 특히 장희빈의 아버지 장경과 부인 윤씨, 고씨의 묘소는 신도비와 함께 곡장과 문인석이 잘 남아 있다. 

장희빈 오빠인 장희재와 부인의 합혼 분묘도 이곳에 있으나 현재 장희빈의 묘는 용두동에 위치한 서오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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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사 기슭에 있는 인동 장씨 장희빈 가족 묘역

장희빈 가족 묘역을 나와 도로를 거쳐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본격적으로 고봉산을 오르다 보면 좌측에 만경사가 나온다.

만경사
만경사

만경사에서 숨을 헐떡이며 한참을 걸으니 고봉산 갈림길이 나타났다. 일요일이라 오미자, 칡차 등을 파는 분도 있었다. 

고봉산(高峰山) 정상에는 군사적 목적의 철탑이 설치되어 있고 군사시설보호구역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고봉산 높이는 203m로 낮은 편이다. 고봉산은 사유지가 대부분이라 시민이 이용하는데 일부 한계가 있다.

고봉산 정상의 모습이다.
헬기장에서 찍은 고봉산 정상의 모습이다.

군부대 내부인 고봉산 정상에는 과거 봉수대가 위치하고 있었다. 봉수대는 산 정상 봉우리를 중심으로 직사각형으로 돌 석축을 쌓은 상태로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봉성산(高峰城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씨 미녀가 달을성현(達乙省縣) 높은 산 위에 봉화를 올려서 안장왕을 맞이하였던 까닭에 고봉(高烽)으로 이름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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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산 갈림길. 비포장도로로 한 등산객이 가고 있는 길이 안곡습지공원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고봉산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아래로 내려가면 사찰인 영천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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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사 전경. 

영천사를 지나 한참 내려 가다보면 삼거리가 나온다. 우측으로 올라가면 장사바위 쪽이고, 좌측으로 내려가면 헬기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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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가면 고봉정 방향이다.

헬기장을 지나 고봉정에 도착하였다. 고봉정은 산행을 하다 잠시 쉬어 가기에 좋다. 나름 전망도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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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정 모습.

고봉정에서 아래로 내려 오면 고봉산은 하산하게 된다. 이어 황룡산과 연결되는 고봉산 삼거리가 나타난다. 고봉산에서 황룡산을 연이어 가려면 큰 대로변을 건너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한 때 지역 정치인들이 고봉산과 황룡산을 연결하는 출렁다리를 놓겠다는 공약을 한 경우도 있었다. 

고봉누리길을 가는 중 도로 때문에 산행의 맥이 끊긴다는 불평이 나오곤 한다. 고봉산 삼거리 건너편이 바로 황룡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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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산 삼거리의 모습이다.

고봉산 삼거리를 건너면 황룡산 입구에 금정굴 표지판이 나온다. 이 표식에서 25m 정도 올라가면 금정굴이 나타난다. 전국 곳곳에 이와 비슷한 곳이 있지만, 6.25 전쟁 시 비극적인 대표적 장소 중의 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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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산 초입에 금정굴 표지판 등이 서 있다. 

금정굴을 지나 한참을 가면 황룡산 삼거리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계속 올라가면 드디어 황룡산 정상이다. 하지만 고봉산 정상과 같이 일반인은 정상을 밟아 볼 수 없다. 

황룡산(黃龍山)은 고봉산과 함께 고봉누리길상의 주요 산으로 고양시와 파주시 경계 지점에 있다. 높이는 해발 134.5m이며 산 정상에서는 고양, 파주, 양주, 김포, 강화, 개성 등이 조망되는 전략상 요충지에 해당된다. 지리적, 군사적 중요성으로 인하여 산 정상에는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어 일반인의 출입은 통제되고 있다.

황룡이란 이름은 성석동 두테비 마을의 두꺼비와 황룡산의 황룡이 다툰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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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부근의 모습이다.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 오면 용강서원이 나온다. 

용강서원(龍江書院)은 일산동구 성석동 황룡산 자락 감내 마을에 위치한 서원 건축물이다. 현재 황살문, 묘정비, 삼문, 사당, 고직사 등의 건조물이 남아 있으며 매년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용강서원에는 고려말의 충신이며 몽고군을 물리친 충정공 박서(朴犀)와 조선 태종 때의 충신인 충정공 박순(朴淳), 숙종, 영조대의 문신인 경헌공 조상경(趙尙絅)을 제향하고 있다.

지금의 건축물은 1970년에 중건되었으며 그 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증수하였다. 제향일은 봄 음력 3월 16일, 가을 음력 9월 16일에 지내고 있다.

감내의 한자식 이름이 감천(甘川)이다. 감내 마을은 웃 감내와 아랫 감내로 마을이 나뉘어져 있다. 감내는 예부터 황룡산 자락에서 시작된 개울 물맛이 달고 좋아 달감(甘)자에 내천(川)자를 써서 감천이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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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 마을 내에 용강서원이 있다.

감천 마을을 내려와 들을 따라 걸어가면 군부대 바로 옆에 권필 묘가 나온다. 

권필(權韠)은 조선 중기 문인으로서 선조 2년(1569)에 출생하여 광해군 4년(1612)에 사망하였다.

송강 정철의 문인으로 문명(文名)이 높았으나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시주(詩酒)로 낙을 삼고 가난하게 살기를 원했는데 문신들의 추천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관직에 오르지 않았다. 저서로는 석주집(石洲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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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필 묘. 바로 옆에 군부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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