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피아니스트 이권희의 인생콘서트-제1화 - 악기와의 첫 만남
팝피아니스트 이권희의 인생콘서트-제1화 - 악기와의 첫 만남
  • 이권희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19.02.28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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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희 음악칼럼니스트
이권희 음악칼럼니스트

[미디어고양파주] 미디어고양파주(MGP)가 이번 주부터 매주 목요일 ‘팝피아니스트 이권희의 인생콘서트’라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고양시 식사동에 거주하며 풍동의 음악작업실로 오가는 이권희씨는 고양시의 오랜 이웃입니다. 6장의 독집음반을 낸 팝피아니스트이지만 솔로로 활동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록밴드인 사랑과평화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하며 음악활동을 넓혀오고 있습니다. 이제 그의 어린시절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제1화 - 악기와의 첫 만남

내가 태어나 자란 마을은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곳이다. 시골에서 살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려 낼 수 있을 법한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마을 한 가운데는 몇 백 년 된 당수나무가 그 위엄을 자랑하며 서 있었고, 밥그릇을 엎어 놓은 듯한 소박한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수많은 나무들이 빽빽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주는 아늑했던 곳이었다. 또한 마을 앞에는 폭이 아주 넓은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비가 조금만 와도 강물은 홍수 난 듯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갔다. 

학교 다니던 꼬맹이 시절, 비오는 날은 은근히 설레게 했다, 강폭이 넓긴 하지만 평소에는 징검다리로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양의 물이 흐르다가  비만 왔다하면 이산 저산의 물들이 한꺼번에 모여 흐르는 엄청난 괴력을 가진 괴물로 변하니 어찌 신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도 학교를 안가도 된다는 번듯한 명분이 되어 주곤 했으니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감사하던지.  

하지만 비가 오기는 하되 기대만큼 오지 않은 날이면 포크레인이 등장했다. 그 포크레인은 강 물살을 뚫고 마을로 우릴 데리러 오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흙 담는 그 거대한 삽에 서너명의 애들을 싣고  공중으로 들어 올린 뒤 마을에서 강 건너편 도로까지 옮겨주는 것, 이것이 포크레인의 임무다. 포크레인을 몰던 그 기사에게 부모님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우리 꼬맹이들은 진심으로 야속해했다. 

여름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온 마을 사람들은 저녁을 일찌감치 먹고 마을입구로 어슬렁어슬렁 나왔다. 나무 밑이나 강바닥에 자갈을 평평히 고른 뒤 가마니를 깔고 하늘을 천정으로 삼으며 누워 시원한 바람을 즐겼다. 어떤 날은 달빛아래서 감자랑 옥수수,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서 한 사람이 노래 한곡을 시작하면 약속이나 한 듯 전부 합창으로 부르면서 밤을 즐기곤 했다. 참  마음 따뜻하고 아련한 시간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어떤 노래든 한번 들으면 잊지 않았다. 마치 카메라로 찍듯이 기억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목청도 예쁘게 잘 불렀던 것 같다. 어른들로부터 ‘이가수’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은 노래할 분위기에는 항상 빠지지 않고 가장 먼저 부를 정도로 흥을 돋우는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래실력은 노래자랑대회에서도 빛을 발했다. 시골 명절 이벤트인 근동 세 개 동네 청년회에서 주최하는 노래자랑에서 2등을 했다. 다들 한 가닥 하는 어른들 틈새에서 내가 너무 멋들어지게 노래를 잘 불러 다른 동네 어르신까지 놀라게 했음에도 심사한 어른은 차마 아이에게 1등을 줄 수가 없다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퉁치며 내게 2등 상장을 내밀었다. 노래자랑에도 장유유서가 있다는 걸 어린나이 어찌 알겠는가. 빌어먹을 장유유서….  아무튼 나는 농사일에 아주 요긴 했던 큰 물통을 상품으로 받은 기억이 있다.  

악기와의 첫 인연은 순간적인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마을마다 다니면서 매일 리어카로 고물을 수거하러  다니는 엿장수가 있었다. 그 엿장수는 뒤 닦이로도 쓸 수 없어 뻣뻣해 팔아야 하는 헌책이나 빵꾸난 고무신, 너무 오래 써서 구멍 난 솥 등의 물건과 엿을 바꿔 주었다. 주전부리가 마땅히 없던 시절인지라 그 달콤한 유혹에 못 이겨 집에 있는 낡은 것들을 엄마 몰래 야금야금 엿장수의 리어카로 날랐다. 

그러던 어느 날 엿장수의 리어카에 낡은 하모니카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 그 때 벌어졌다. 그 달콤했던 엿 맛도 기억나지 않고 오로지 나의 시선은 하모니카만을 좆았던 것이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저 예쁜 소리가 나는 걸 가질 수 있을까’라는 마음뿐이었다. 조그만 머리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집에 가지고 나올 물건은 더 이상 없었다. 그래서 집으로 뛰어 들어가 마늘이랑 쌀을 닥치는 대로 가지고 아저씨에게로 가서 바꾸자고 졸랐다. 아저씨는 아이들이 엿이 먹고 싶어 종종 부모 몰래 양식들을 훔쳐내 오는 것을 받았다가 부모들로부터 원성을 듣곤 했던지라 안된다고 했지만 바꿔 달라는게 엿이 아님을 알고 못이기는 척 하모니카를 내주셨다. 그때 그 기분이란…

엿 대신 그 하모니커를 들고 바로 집으로 와서 치약으로 깨끗이 닦은 뒤 입으로 부는데, 아! 그 소리는, 그 소리는 다른 차원의 세상을 열어놓았다.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화려한 음의 조화가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온종일 입에 물고 마을 곳곳을 불고 다니니 어른들께서 신기하게 여기시고 시험 삼아 ‘나그네 설움’이라는 곡을 연주해 보라 하셨다. 나그네 설움은 동네 어른들이 입에 달고 다니셨던 노래라 모를 수가 없던 노래였지만 연주를 한다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하모니커란 악기는 음계가 바람을 내뱉고 빨아들이고 하면서 연주하는 것이므로 그 음계를 체계적으로 배우며 연습하지 않으면 쉽게 연주하기 힘든데  나그네 설움이 음이 되어 흘러 나오자 어른들은 너무나 대견해 했고 줄줄이 신청곡이 이어졌다. 물론 내가 아는 곡들이었고 연주가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마을에서 스타가 되었다. 나는 하모니카로 연주할 수 있다는 내 자신이 너무 벅찼다. 그날은 내가 예술가가 되었고  음악인이 되었던 날이었다.

- 삽화; 이영은(zz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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