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피아니스트 이권희의 인생콘서트 2화-아버지와 풍물놀이 
팝피아니스트 이권희의 인생콘서트 2화-아버지와 풍물놀이 
  • 이권희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0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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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희 음악칼럼니스트
이권희 음악칼럼니스트

[미디어고양파주] 미디어고양파주(MGP)가 매주 목요일 ‘팝피아니스트 이권희의 인생콘서트’라는 연재를 지난주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고양시 식사동에 거주하며 풍동의 음악작업실로 오가는 이권희씨는 고양시의 오랜 이웃입니다. 6장의 독집음반을 낸 팝피아니스트이지만 솔로로 활동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록밴드인 사랑과평화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하며 음악활동을 넓혀오고 있습니다. 이제 그의 어린시절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제2화 - 아버지와 풍물놀이 

마을 가운데에는 200여년쯤 되는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늙은 당수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이 나무는  한눈에 봐도 ‘호호 할아버지 나무’라고 할  만큼 나무의 껍질이 다 벗겨져 있었고 나무 가지도 그리 많지 않았다. 봄이 되어도 새잎은 듬성듬성 밖에 돋지 않아서 철부지였던 우리는 죽은 나무처럼 여겼다. 

이 나무 앞에는 화강암으로 된 제단이 놓여져 있어 평소에는 제단위에 주저앉아  소꿉놀이도 하고 어떤 형들은 풀잎뭉치로 녹색 줄을 그어 임시 장기판을 만들어 장기를 두기도 했다. 햇살이 좋은날은 화강암 돌이 햇빛에 달구어져 온돌방처럼 따뜻해졌기 때문에 누우면 금방 낮잠이 들곤 했다. 겨울이면 그 자리를 서로 먼저 앉으려고 자리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고목나무가지가 아래까지 뻗어 있어 제단을 밟고 당수나무 위를 쉽게 올라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나무에 올라타서 많이 놀았다.

나무아래는 광장처럼 넓은 공간도 있었다. 정말 우리가 놀기에는 ‘딱’인 장소였지만 , 마을의 어르신들에게는 신성하고 중요한 공간이었다. 어르신들에게 이 공간은 논의의 장이 되기도 했고 해마다 치러지는 마을 행사의  메인무대이기도 했다. 당수나무 아래서 치러지던 여러 행사 중 나의 흥미를 끈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풍물놀이였다. 동지날‧설날‧정월대보름‧추석 등 고유명절 때면 항상 빠지지 않았던 그 풍물놀이 말이다. 그때는 ‘사물놀이’란 단어가 생기지 않았을 때라 다들 ‘풍물놀이’라 하던 시절이었다.

풍물놀이패 행렬에는 동네사람들이 나를 포함해 모두 참여했다.  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집집마다 돌았다. 집안의 나쁜 기운을 쫓고 좋은 운이 들어오길 기원하는 동시에 가족들의 건강을 빌었다. 풍물소리는 온 마을이 떠나갈듯  울려퍼졌고, 또 그런  왁자한 즐거움이란 지금에 와서도 잊을 수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풍물소리의 진행은 단순한 리듬이 계속 반복적으로 돌고 도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 내 귀에는 어찌나 재밌고 흥겹게  들리던지 꽹과리 리듬 패턴에 맞춰 내 허벅지를 치며 따라 했다. 풍물리듬에 푹 빠져서 온종일 풍물놀이패를 따라 다니다 저녁엔 그야말로 떡실신이 되어 잠이 들곤 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늘 풍물놀이패의 메인 멤버이셨다.  풍물놀이 패 가운데서도 아버지께서는 유독 흥이 많고 리듬감을 살릴 줄 아는 분이셨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아버지가 ‘재미있게 놀 줄 아는 분’ 혹은 ‘여흥을 즐길 줄 아는 멋진 분’으로 인정됐다. 아버지께서 한바탕 신들린 풍물놀이를 하고 들어오신 다음날이면 어깨가 아파서 일을 잘 못하실 정도였다. 그리고 가족친지들의 연중행사에서도 장단을 맞춰가며 끊임없이 노래 부르시는 유명한 분이셨다.  

삽화 = 이영은(zzari)
삽화 = 이영은(zzari)

아마 나의 음악적 끼도 그 원천을 찾는다면 아버지로부터였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풍물놀이 행사를 앞둔 어느 날 여느때처럼 아버지께서 잠시 연습을 하시다 갑자기 어딘가를 가셨다. 그 사이에 나는 바닥에 놓인 꽹과리에 대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꽹과리를 들고  어른들이 치던 리듬대로 혼자서 쳐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꽹가리에 몰입이 되었던지 아버지께서 다시 돌아온 줄도 몰랐다. 아버지께서 “너... 한번 같이 해볼래?”라고 말할 때까지는. 

나는 너무나 기쁜 마음에  “예!”하고 즉시 대답을 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풍물패 멤버분들에게 뭐라 말씀을 하셨던지, 내게 상쇠 역할을 맡기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나에게 먼저 꽹가리를 치고 시작하라 하셨다. 난 망설임 없이 과감하게 치고 들어갔고 나머지 분들이 합세를 해오자 신기하게도  악기소리 전체가 어우러지면서 리듬이 착착 들어맞는 걸 느꼈다. 내 머리카락이 쫑긋서고 몸 전체가 달아오름을 느낀 건 두 말할 나위 없었다. 그 순간이 내 인생에 있어 최초의 앙상블 경험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뿌듯한 경험이었다. 통상 운동신경은 달리기로 평가하고 음악감각은 리듬감으로 확인을 한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는 나는 타악기에 흠뻑 빠져서 틈만 나면 두들기며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를 따라 장날 시내에 갈 일이 생기게 되었다. 약장수가 약을 팔러 온 모양인지  사람들이 모여 구경이 한창이었다. 먼 곳에서도 시끌시끌하던 그곳에 가자, 장사치가 원숭이를 데리고 생전 처음 보는 여러 개의 북으로 만든 악기를 쳐 가면서  쇼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너무나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풍물놀이에서 듣던 소리와는 전혀 다른 악기 소리였다. 원숭이 재롱 따위는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게는 오로지 장사치의 손과 북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삽화 = 이영은(zzari)
삽화 = 이영은(zzari)

시간은 자꾸 가고 엄마는 장을 봐야 해서 나를 재촉했지만 내 발은 도저히 떨어지질 않았다. 결국 약장수가 쇼하는 곳을 절대 벗어나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을 스무 번쯤 받은 후에야 어머니는 불안하나마 장을 보러 가셨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 때 얘기를 가끔 하곤 하신다. 몇 시간을 장을 보고 오셨는데 그 때까지도 있던 그 자리, 그 북 옆에서 내가 조금도 안 움직이고 눈도 못 떼고 있더라고…. 그 신기하던 북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한 참 세월이 지난 후의 일이다. 그것은 ‘드럼’이었다.  

장에서 돌아온 그 이후부터 며칠 동안 드럼이라는 악기가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친구들과 놀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였다. 드럼에 대한 내 집념은 결국 그것을 재현해서 만들고 싶은 충동으로 이어졌다. 나무 각목을 뼈대로 세운 뒤 합판을 둥글게 잘라 제법 드럼 모양새를 만들었지만  결국 심벌이 문제였다. 그래서 주위의 냄비 뚜껑을 주워다 걸어서  의자에 걸터앉으니 어슬프나마 드럼의 형상이 갖추어졌다. 

그때 갑자기 아버지께서 불쑥 나타 나셨다. 난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아무리 풍물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라도 드럼은 모르기 때문에 쓸데없는 걸 만든다고 야단맞을 각오로 나는 바짝 기죽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것은 당시 아버지의 태도였다. 아버지께서는 꾸지람은커녕 내가 기특해보였는지, 아니면 당신께서도 좋아하는 것이었는지, 내게 드럼 형태를 그림으로 그려 보라시며 내가 만든 드럼에 이리저리 못질도 제대로 해주셨다.

이튿날 일어나 보니 찌그러진 냄비 뚜껑은 없어지고 멀쩡한 큰솥뚜껑이 걸려 있었다. 난 기분이 너무 좋았고 아버지와 나는 같은 취향인 걸 새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지금 까지 뮤지션으로, 아티스트로 긴 세월 해올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든든한 정신적 후원이라 생각이 든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했을지 몰라도 아버지의 그늘에 있을 땐 단 한 번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내게 아버지란 그런 분이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2012년 7월 31일 92세의 일기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노래를 즐겨 부르셨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에서 현란하게 북을 치시고 노래를 부르며 친구들과 풍류를 즐기고 계시진 않은지…. 지금 아버지가 그립다.   

삽화 = 이영은(zzari)
삽화 = 이영은(zzari)

 
사물놀이에 대해서 설명하고 넘어갑시다.

사물놀이는 사물(꽹과리‧징‧장구‧북)을 중심으로 연주하는 풍물에서 취한 가락을 토대로 발전시킨 계열의 국악이다. 1978년 2월 2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공간사랑’에서 김덕수를 중심으로 창단된 (사물놀이)패에서 연주를 한 것이 사물놀이의 시작이다. 이들은 기존의 풍물놀이에 비해 앉은 상태로 풍물가락을 실내 연주에 적합하게 재구성했다. 이들은 주로 호남풍물, 짝드름, 웃다리풍물, 설장구놀이, 영남풍물 등을 연주했다.

꽹과리는 천둥을 의미하고, 징은 바람, 북은 구름, 장구는 비를 의미한다. 음양을 나누면 가죽으로 만든 북과 장구는 땅의 소리, 쇠로 만든 징과 꽹과리는 하늘의 소리를 나타낸다. 꽹과리는 덩치가 가장 작으면서 소리는 가장 도도라져서 사물놀이에서 지휘자의 역할을 맡는다. 징은 천을 뭉툭하게 감은 채로 치기 때문에 소리가 여운이 길고 푸짐하다. 사물들 중에서 어머니의 역할을 한다고도 한다. 장단의  머리박에 한 번씩 쳐주기에 전체 가락을 푸근하게 감싼다. 장구는 양손에 채를 들고 치는데 높은 음이 나는 쪽을 열편 혹은 채편이라 부르고, 낮은 음이 나는 쪽을 궁편 혹은 궁글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각각의 채를 열채, 궁채라고 한다. 

사물놀이에서는 꽹과리가 지휘를 맡고 이외는 박자의 빠르기나, 시작 그리고 끝을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북은 꽹과리와 장구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터를 만들어 주고, 든든한 기둥을 세우는 역할을 하며. 사물놀이는 앉아서 하는 편이고 풍물놀이는 서서 다니면서하는 민속고유의 놀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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