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 연가 - 버림받지 않고 기억되는 인생
물망초 연가 - 버림받지 않고 기억되는 인생
  • 조규남 목사/우림복지법인 대표
  • 승인 2019.03.22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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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두려운 이유, 우리는 서로에게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원하기 때문  
좋은 기억을 소중하게 품어서 삶의 용기와 소망을 일깨울 필요가 있어 

[미디어고양파주] “Non ti scordar di me~” 내가 좋아해 즐겨 부르는 이태리어 노래 가사다. ‘나를 잊지 말아달라’는 물망초(勿忘草)의 꽃말이기도 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이별’이다. 이 단어는 어떤 경우에든지 듣기만 해도 마음이 저려와 회피하게 된다. 세상에 태어난 것은 세상과 만나기 위함이며, 사랑한다는 것 역시 서로를 만나기 위한 것인데, 사랑하는 사람끼리 헤어져야 한다면 이는 삶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 같아 못 견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원한 이별하는 사별(死別)은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리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죽음’이란 단어는 가장 싫다. 그 다정한 목소리, 피부에 와 닿는 부드러운 촉감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눈을 깜박이는 그 사랑스런 눈빛… 이 모든 것을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미칠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죽음을 너무 싫어해 친척의 초상집에도 안 가시고 죽음을 상징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 질색했다. 그런데 오래 살지는 못했다. 

아버지와 나의 공통점은 죽음을 싫어했다는 것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버지는 죽음의 언저리를 피했던 반면 나는 죽음의 냄새나는 곳 그 중심에 다가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더 챙겼다. 그리고 자살 직전의 절망하는 사람들이나 시한부 인생의 호스피스, 그리고 노인요양원에 있는 사람 등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 틈에서 그들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소중히 여겼다.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기에 아주 싫지만, 아직 죽음에 이르기 전 생명의 호흡이 있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물체를 만나는 것은 좋아한다. 죽음이 가까운 그들에게서 나는 역설적으로 생명의 꿈틀거리는 애착과 환희에 찬 삶의 찬가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별을 그렇게도 싫어하는 것은 사랑하는 관계가 단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별은 내게 ‘버림’의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버림받는 것처럼 비통한 것은 없다. 버림받음이 두려운 것은 내가 항상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의 내면세계로부터 나에 대한 기억이 모두 지워진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버림받음은 잊혀짐이고, 잊혀진다는 것은 나의 존재가 송두리째 그의 기억 안에서 말살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오랫동안 기억되는 존재가 되기 원한다. 현대인의 가장 큰 난제는 관계 단절로부터 오는 고독과 소외감이니까. 

나는 최근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10여 년 동안 책임지고 있던 K상담기관의 책임자 자리를 물러났다. 내부적으로 약간 어렵고 복잡한 문제가 있었던 때문이지만 그보다는 나의 능력이 그 기관을 이끌고 가기에는 부담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사임서를 쓰고 책임자의 짐을 벗었다. 스스로 퇴임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아무래도 나의 부족한 리더십으로 인해 또 하나의 새로운 관계단절의 이별이 발생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내 존재가 좋은 기억으로 남기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어제는 내가 속해 있는 교단의 노회 ‘은목회(은퇴 목사회)’ 모임에 참석했다. 나는 이 모임의 신입으로 가장 막내다. 이 모임에 나오는 분들은 나보다 나이도, 목회 경력도 그리고 인생 경험도 풍부한 어르신들이다. 나는 이들에게서 아직까지도 내가 겪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귀한 경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바짝 다가가 귀를 세운다. 이제 인생 3막의 시작점에서 무엇이든 새로 듣고 보고 배워야하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은 시행착오(施行錯誤)가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최근 내가 가장 관심 갖는 것은 은퇴 목사들이 은퇴한 본 교회를 계속 출석하느냐 마느냐 하는 단순하면서도 그리 쉽지만은 않은 문제다. 나는 은퇴하기 오래 전부터 교우들에게 세뇌하다시피 나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며 특별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기 전에는 절대 이 교회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쳐왔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스스로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교회 밖에서의 생각들은 또 달랐다. 내가 만나 본 어른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어제 내가 개인적으로 대화한 은목회의 두 선배 목사 역시 서로가 달랐다. 두 의견 모두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들이었다. 함께 대화하는 중에 얻게 된 결론은 “일부러 이별을 만들지 말고 이별하지 않도록 노력하되, 집착하지 않은 가운데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여백을 남겨두는 여유를 가져라”는 것이었다.

어제 은목회 대화에서는 이번에 은퇴하면서 거창 시골로 내려간, 누구나 다 아는 L 목사의 이야기가 화제로 떠올랐다. 이 역시 나이 든 은퇴 목사님들 사이에서는 칭찬과 비판의 이야기가 함께 터져나왔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나 역시 양가감정(兩價感情, ambivalence)으로 두 생각이 있었다. 평소 나 역시 그를 존경하고 있었기에 그리고 같은 시점에서 은퇴한 입장이기에 조심스럽게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그는 떠나기에 앞서 교인들에게 “거침없이 철저히 나를 버려달라!”고 당부했다. 물론 이 말의 의미를 알고 있지만 아쉬움이 있었다. 보통 자신을 잊지 말고 오래 기억해달라고 하는데, 그는 왜 버려달라는 거지?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울부짖으며 버림받음의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는가. 시편에서 시인의 가장 큰 절규의 간청은 성령을 거두지 마시라는 것 아닌가. 여러 생각이 겹쳤다. 

그러면서도 자기를 부인하는 삶은 이웃을 더 가까이 사랑하는 삶이고, 이웃을 보듬고 쓰다듬어주는 삶이라는 것으로 생각이 정리됐다. 그래서 내가 자연의 삶을 좋아하면서도 시골로 내려가지 못하나 본다. 나는 꽃보다 사람이 좋고, 자연을 배경으로 한 외딴 곳의 전원적 삶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사람 사는 동네’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공동체의 삶을 꿈꾼다. .

인간은 누구나 서로에게 오랫동안 기억되는 존재이기 원한다. 나쁜 기억들이야 빨리 잊어버려야 하겠지만, 좋은 기억들이라면 소중하게 아끼고 품어서 새로운 삶의 용기와 소망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서로가 서로를 쉽게 버리고 쉽게 잊고 가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인생을 살기 원한다. 결코 버리거나 포기할 수 없는 위 사진의 저 난민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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